아름다워서 꿈같은 이곳
네덜란드 캠핑장
Camping Hoeve de Gastmolen

31일째 여행지는 독일 "아헨"이었다.
그 근처에 있는 캠핑장이나 자동차 모텔을 구글 지도로 찾던 중
평점도 좋고 예쁜 분위기의 캠핑장이 근처에 있었다.
국경을 넘는줄도 모르고 독일이 아닌 네덜란드의 캠핑장에 가게 되었다.

유럽 자동차 여행을 다니다 보면 낮동안 소도시 구경을 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 중에 해가 넘어가서
어쩔 수 없이 마을 구석진 캠핑장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 캠핑장을 이용하는 동양인을 처음 봐서 신기해한다.
늘 처음에는 "차이나?" 하고 묻는다.
처음엔 기분이 이상했는데 이상할것도 없었다 중국인이 상대적으로 아주 많으니까 그러려니 한다.
독일 어떤 캠핑장 주인할머니는 영어를 전혀 못해서 (숫자, 체크인, 체크아웃 조차 모르셨다) 손짓 발짓을 동원해야 했거나,
프랑스 어떤 캠핑장 주인 아저씨는 동양인은 처음이라고 신기해하며 말을 건네면
한국이 어디쯤 있는 국가인지 이야기 해주기도 했다.
우리가 갔던 대부분의 캠핑장에는 동양인이 없었다.
그래서 캠핑장을 이용할때는 늘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생긴다.

다행히 이 네덜란드 캠핑장은 젊은 학생과 아가씨 중간쯤 보이는 직원이 있었고
유창하지 않지만 영어를 할 줄 알아서 의사소통은 가능했다.
어차피 우리도 유창하지 않으니까 딱 좋다.
하루 텐트 1동 사람 2명 환경세, 전기는 쓰지 않는 조건으로 가격은 24유로
한화로 32000원 정도 된다.
한국보다 싼 가격이다.

텐트와 캠핑카의 구역이 따로 구성되어 있는데,
보통 텐트 구역은 차와 함께 캠핑장 내로 들어가서 주차를 하고 바로 옆에 텐트를 친다.
이곳은 주차장이 따로 있어서 캠핑장으로 들어가려면 모든 짐을 가지고 들어가야만 해서 번거롭다 생각했는데
캠핑장 내 풍경을 보니 그렇게 하는 이유를 백 프로 이해했다.
차가 없으니 이 예쁜 장소가 더 동화 같은 풍경으로 보였다.
주차장에서 짐을 내리려는데 웬 젖소 두 마리가 주차장 사이를 질주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황급히 와서 소를 한쪽으로 몰고 가는데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힘 좋은 젊은 소들이 울타리를 탈출해 나와서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알려주었다.
위험한 상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골스런 상황 자체가 귀여웠고 웃음이 나왔다.

남편은 군용 스텐 반합, 가벼운 티타늄 재질 코펠이나 미군용 팬 등 군용 장비를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데
나름 요리도 그럴싸하게 잘 된다.
네덜란드 캠핑장에서 영상 촬영해본 캠핑요리.
남편과 소꿉놀이하는 기분으로 만들어 보았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러 왔는데 모든 집안 남자들이 설겆이를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아주 바람직하고 흐뭇한 풍경이다.
우리 서방님은 캠핑장에서만큼은 꼭 설겆이 담당인데 다른 집안도 그런가 보다.


리셉션 뒤쪽으로 들어가면 놀이 공간이 있는데, 주로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탁구대와 TV, 장난감이 있다.
여기서 전자제품 충전이 가능하고 밤 9시 이후로 문을 닫는다.

캠핑장 근처 산책을 나왔다.
마치 캐나다 드라마 "빨강머리 앤"에 나오는 풍경처럼 반짝였고 날씨까지 완벽했다.
다 익어 머리를 숙인 밀밭이 아름다워서 그 속에 들어가 사진도 남기고 밀 수염 놀이도 했는데
다음날 싹 밀어버린 추수된 밀밭을 보고 하루만 늦었더라도 풍경이 아쉬울뻔했다.


밀밭을 지나 캠핑장을 들어가기 위해 지나왔던 국도가 나왔다.

그냥 국도 옆 네덜란드 시골집인듯한데, 흰 벽에 까만 마차 벽장식도 예쁘고 초록창을 통해 보이는 작은 인형들도 귀여웠다.
바로 옆 울타리에서는 하얀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우리나라 누렁소는 외양간에 있는데 이 나라 하얀 소들은 울타리 안에서라도 자유로워 보인다.
감성이 충만한 이런 곳에서 산다면 어떤 기분일까.


지도에선 여기 어디쯤에서 지역농산물을 판다고 했는데 시간이 늦어서 문을 닫은 듯했다.
8시쯤 나왔으니 당연히 영업은 끝났을 테지만 산책 삼아 나온 길이 예뻐서 후회되지 않는다.

유럽에서 캠핑을 하게 되면 여름의 한가운데에 있는 7-8월에도 밤에는 쌀쌀해서 경량 패딩은 꼭 필요하다.
7월 초 프랑스 중부에서는 특히나 추웠고, 7월 말 이곳 네덜란드는 그나마 가을 날씨 정도긴 하다.
가져갔었던 여름용 솜 침낭이 얇아서 영상 5도짜리 두툼한 솜이불 같은 침낭을 두 개 더 샀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은 한국에서 전기담요를 가져가기도 한다는데,
최소 장비 서바이벌 캠핑을 선호하는 우리 부부는 전기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라
다음 유럽 캠핑 여행을 간다면 영하에서도 견디는 오리털 침낭을 가져갈 예정이다.

사진 안에 보이는 자전거 두대와 텐트 한동의 주인은 네덜란드 노부부의 것인데,
자전거에 텐트와 장비를 싣고 20km 정도를 달려온다고 한다.
자전거길도 평탄하고 오는 길도 아름답단다.
"오늘 자전거 타고 캠핑이나 할까"라고 하면 그날이 출발하는 날이라고...
이곳 네덜란드 캠핑장에 느낀 건 "삶의 질"이었다.
난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금전적인 행복을 떠나서 소소하지만 그 안에서 기쁨을 느끼고 있는지 말이다.
평화로운 풍경 안에서 나도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사실이 벅찬 곳이었다.